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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빙의 #성장소설 #힐링소설 #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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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완결-외전완결 #카카페 #기무







천계영 작가의 <좋아하면 울리는>에 무척 아끼는 대사가 있다. 


누군가가 마음의 지하실을 연다. 그 문을 열어달라 말할 때에는 나에게도 책임이 생긴다.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타인의 계단을 밟으며 내려간다. 네가 혼자 외롭게 참아낼 때마다 하나하나 쌓여갔을 계단. 내가 살아보지 않은 인생이므로 이 계단이 왜 이렇게 긴지 함부로 묻지 않을 것이다. 이 계단의 밑바닥에 아무리 고통스러운 것이 놓여있더라도 등을 돌리지 않을 것이다. 네가 그래 줬던 것처럼.


이 한 단락의 독백이 <악녀의 애완동물>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건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힐링이 필요한 당신에게



어제가 쌓여 오늘의 내가 된다. 하지만 과거의 나를 부정하고 싶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의 원탑 주인공인 샤샤는 책빙의자로 한미한 남작 가문의 영애이다. 이대로 이름없이 살다간 늙고 돈많은 노인에게 팔려갈 것만 같아 사교계에 제 힘으로 제 자리를 만들어내는데, 그건 또래 귀족들의 애완동물을 자처하는 것이다. 귀엽다 쓰다듬을 수 있게 발톱을 숨겨두고, 예뻐해 주면 무릎에 누워 애교를 떨고, 힘든 일이 있어 화풀이하고 손찌검을 하면 피하지 않고 곁에 남는다. 울면서 심했다고 용서를 구하면 다 괜찮다며 온기와 위안을 전한다. 험한 꼴을 당하고도 주인 곁을 떠나지 않고 꼬리를 흔드는 애완동물처럼. 그게 샤샤 타르트가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택한 방법이다. 


감정쓰레기통 노릇을 하면서도, 사실 샤샤는 자신이 매우 현명한 선택을 했노라 믿고 있다. 예쁘게 눈을 깜빡이며 상대의 기분만 살살 맞춰주면, 드레스와 보석부터 맛있는 음식까지 제 부모도 해주지 못하는 귀한 것들을 쉽게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꿀 빠는 인생이라며 삶의 만족도가 그렇게 높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녀의 손끝은 하도 물어뜯어 피를 내는 일이 잦았고, 배부른 줄 모르고 다디단 디저트를 쉼 없이 먹으면서도 살이 찌지 못했다. 누가 봐도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데, 제 주인들은 애완동물에게 그만한 관심을 두지 않았고 저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했다. 의심 없이 행복한 삶이라 믿고 있는데, 사실 그녀는 아프다. 


제 상황을 왜곡해서 인지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빙의전 그녀가 오랜 기간 겪었던 가정폭력에 있었다. 준비되지 않은 부모의 원치 않은 임신으로 축복받지 못하고 무관심과 폭력으로 자랐다는, 그리 보기 드문 불행은 아니었다. 드물지 않은 불행이었기에 사회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는 폭력을 피하기 위해 기민한 눈치를 가지게 됐고, 필요한 관심을 얻기 위해 눈치를 살펴 상대가 원하는 말을 할 줄 알게 되었다. 상대가 정말 필요로 하는 위로를 전할 줄 아는, 마치 힐러같은 대단함은 뛰어난 공감능력에서 온 상냥한 마음씨 덕분이 아니라 피 묻은 자신의 상처에서 비롯된 셈이다. 그녀가 제 주인들에게 무조건적인 네 편임을 자처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진심으로 지지와 응원을 보내는 일은, 아마도 빙의 전 자신의 삶에 단 한 번, 간절히 원했던 했던 것임이 틀림없다.


그런 그녀의 상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내정된 황태자비이자 공작가 유일한 여식인 레베카다. 전생에서 읽은 원작에 따르면 그녀는 황태자의 사랑을 구걸하다 못해 그의 연인 릴리스를 죽이려다 사형당하는 후안무치한 악녀였다. 하지만 샤샤가 겪은 레베카의 모든 면은 악녀와는 거리가 멀었다. 관계가 깊어갈수록 레베카의 행복을 빌게 되고, 그녀도 자신처럼 아픔의 과거가 있고 불행한 현재가 있음을 알고 제 일인양 아파한다. 그래서 샤샤는 예견된 악몽으로부터 레베카를 구하기 위해 자존감 회복 프로젝트에 돌입하게 된다. 레베카가 정해진 미래가 아닌 자신의 길을 찾아 부딪히고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에서 깨닫는 모든 순간의 기록은 우리가 거쳐온 어느 시절과 같다. 레베카는 없던 꿈을 찾아 헤매고 쟁취하고자 하던 그 언젠가의 우리를 대변한다.


한편 원작에서 실질적으로 공작가를 무너뜨리고 레베카를 죽인 인물은 황태자의 수석보좌관인 아스이다. 명석한 두뇌와 엄청난 끈기를 가졌으나 사랑받지 못한 유년시절을 겪었다. 단지 귀족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저보다 못한 것들에게 질시와 경멸을 받아왔고, 중립을 유지하는 것 같던 교수들도 교활하게 가면을 쓰고 있었을 뿐 저치들보다 나을 바 없는 속물이었다. 그래서 저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서 더한 권력을 갖기를 열망했고 오로지 독보적인 성공만이 목표였다. 황제의 제안으로 시작부터 화려하게 황궁에 입성했으나 시련은 계속된다. 제 괴로움이 실체화된 자가 바로 황태자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그보다 모든 면에서 압도적으로 잘났지만, 황태자에게는 철이 들기를 웃으며 기다려주는 부모가 있고, 멍청하고 무능해도 자신과 같은 수하를 여럿 두면 그만인 권력이 있다. 고귀한 혈통에게 당연하게 이어지는 존경과 사랑까지. 그 모두 아스는 가져본 적 없고 가질 수도 없는 것들이다.  제 아무리 발악해도 금수저를 결코 넘어설 수 없다는 좌절감과 열등감. 가진 것이라곤 탯줄밖에 없는데 그 '하나'가 제가 이뤄온 모든 것을 하찮고 비루하게 만든다. 그렇게 열등감에서 시작된 염세주의와 뒤틀어진 자기비하를 알아보고 도닥여주는 것으로써, 샤샤는 레베카 뿐만이 아니라 아스 또한 구원하게 된다. 


그렇게 각자의 어둠에서 벗어난 두 사람은 이제 샤샤의 아픔에 집중한다. 샤샤가 자신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사연을 묻지도 않고 다그치지도 않으며 천천히 스스로 빠져나올 수 있게 기다려준다. 샤샤는 자신이 빙의자이며 가정폭력 피해자였음을 마지막까지 말하지 않지만, 비밀이 있다고 해서 그들 사이의 신뢰가 약해지지는 않는다. 서로의 바닥에 어떤 추함이 있든 외면하지 않을 것이고 재촉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그런 믿음을 가진 친구들이 제 곁에 있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된다는 걸 안다.


우리가 트라우마와 같은 정신적 문제를 극복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을 의지력, 정신력이라고들 말하는데 그건 100% 틀린 말이다. 피해자들로 구성된 자조모임은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들이 모여 위로받기 위함이 아니라, 상처를 말로 내뱉고 또 다른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상황을 객관화하는 과정을 거치기 위함이다. 중요한 것은 입을 움직여 말을 하고 내 이야기를 내귀로 듣고, 또 남에게 제 생각을 말하는 것이 나에게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부분이다. 특히 가장 유효한 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정서적 안정따위가 아니라, 트라우마를 입을 움직여 말하고 귀로 소리를 듣는 과정에서 겪는 신체 자극이 있다는 점이다. 운동을 하고 볕을 쬐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땀을 흘려 기분을 개운하게 하고 볕을 받으며 포근한 기분을 느끼기 위함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몸을 움직이고 자극을 받으며 일상의 감각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 그러니까 내가 여전히 사건 전과 다를 바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는 일상의 감각을 느끼는 것이 핵심이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은 진리다. 하지만 그 인과를 바꿔 말하면 그건 궤변이다. 정신만으로, 의지만으로 내 상태를 호전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내가 나약한 탓이 아님을 깨닫는 건 말 그대로 '정말 필요'한 일이라는 거다. 


또 정신력이 약하다 한들, 그래서 뭐. 그건 잘못이 아닐뿐더러 오늘 나를 불행하게 만든 원인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내 행복의 길을 찾는 것 역시 정신력을 강하게 하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그 명징한 사실은 소설 내내 샤샤의 위로로, 레베카와 아스의 응원으로, 릴리스와 페인, 나스카와 칼리아 등의 많은 등장인물이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독자에게 전달된다. 그래서 이 작품은 힐링소설이다. 




전형적인 캐릭터를 사랑할 수 있게 만드는 작가의 자상함


이야기의 갈등 구조는 단순하고 사건의 위기와 해결 과정도 복잡하지 않다. 등장하는 캐릭터도 기존 로판의 전형과 다르지 않다. 물론 흔치 않은 설정이 둘 있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는 동안 예상 못 할 정도의 반전은 아니다. 이야기의 흐름도 캐릭터의 설정과 성격도 새로울 것이 없지만 이 소설은 특별하다. 그 특별함은 각 인물의 내면으로 이끄는 작가의 친절한 서술과 온화한 시선에 있다. 그로 인해 등장인물의 행동에 공감하게 하고 응원하게 만든다. 그 몰입으로 이끄는 과정이 억지 없이 자연스럽다. 독자가 온전하게 등장인물의 편이 되었을 때 '네 잘못은 없다'거나 '지금도 잘 하고 있으니 무리하지 말라'는 대사들은 지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전하는 말처럼 느껴진다. 근사하게 꾸며내지도 않고 어려운 메타포 없이, 정말 담백하게 전하는 위로와 응원은 간결해서 더 분명하고 가깝게 마음에 닿는다. 


그래서 메인 플롯을 차지하는 사건의 진행 속도가 어떠하든, 주인공의 반대편에 서 있는 황태자의 세력이 어떻게 살고 있든 그건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는다. 그보다 오늘은 얘들이 얼마큼 더 단단해졌나, 얼마나 더 나아갔는지가 궁금하다. 그저 주요 인물들이 서로 다독여가며 상처를 극복하고 스스로에게 더 집중할 수 있게 되길 바라게 된다. 이쯤 되니 단순한 플롯 구성은 독자의 시선을 인물의 내적 성장에만 집중시키기 위한 노림수였나 싶기도 하다. 구성은 단순하게, 문장은 쉽고 부담스럽지 않게, 그렇게 전체적으로 힘을 뺀 작법은 글의 집중도를 높이게 하는 큰 장점이다. 재밌고 쉽게 쓰인 자존감 관련 자기계발서, 예컨대 중학생 조카에게도 추천함직하다.





진입장벽을 넘어보자



이 소설 최고난도의 진입 장벽은 단언컨대 제목이다. 표제뿐만 아니라 챕터마다 붙은 소제목들도 마찬가지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처럼 시선을 끌어 상업성을 높일 의도였는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게는 외면하게 만드는 이유였다. 그럼에도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한 것은 조아라 선연재 당시 꾸준히 투베 순위권에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과, 카카오페이지로 이사 후 연재하는 동안 일관되게 유지된 높은 평점 때문이었다. 지금은 9.9이지만 본편이 거의 다 끝나갈쯤까지 평점이 10점이었다. 모두 알다시피 댓글수를 1만을 넘기고도 10점을 유지하는건 어렵다. 그래서 제목의 어그로를 이겨내고 읽기 시작했고, 이는 만족스러운 선택이었다. 



로판임에도 불구하고 로맨스 라인이 빈약하다. 특히 아스의 약혼 제안이 샤샤가 부모의 압박에 못이겨 마뜩치 않은 혼처에 팔려가기 전에야 이루어졌고, 그 이전에 보였던 관계 역시 사랑인지 우정인지 애매한 모습이다. 자신을 구원해준 은인에 대한 보답인지 지켜주고 싶은 안쓰러움인지, 아님 정말 숨겨온 사랑이었는지 뚜렷하게 알 수 없다. 그러한 이유로 이야기가 마무리되기까지도 레베카X샤샤를 미는 댓글들이 굉장히 많았다. 남주인 아스가 비중을 점차 늘려가지만 로맨스는 여전히 두드러지지 않아서 크게 지지를 받지 못했음이 아쉽다. 또한 사건의 종결과 동시에 본편 완결이 예정되면서 이제 겨우 시작되는 둘의 연애사 역시 급하게 정리된 감이 있다. 다만 외전에서 늦게나마 서서히 호감을 쌓아가는 과정과 결혼 생활이 그려진다. 로맨스판타지보다 힐링판타지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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