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필사진
오늘의 엠마
오늘의 엠마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티스토리 뷰

서평(스포주의)/소장각

에보니 / 자야

오늘의 엠마 2018. 2. 3. 00:57

#정치 #정책 #내전 #로판 #성장소설

#탄탄한짜임새 #명대사 #입체적캐릭터 #버릴캐릭터가없다 #로판에바라왔던모든것

#본편완결-외전완결 #카카페독점 #기무







첫 리뷰글을 <에보니>로 하고 싶었다 말하면 내가 이 작품을 얼마나 아끼는지 전해질까. 회차를 거듭할수록 좋은 글이라 종이책을 기다리고 있고, 내게 아이가 있다면 같이 읽고 싶은 소설이라 말한다면 알아주려나.


외전까지 280편 완결이고, 출간 이벤트로 추가 외전이 올라오길 고대하고 있다. 조아라에서 54편까지 선연재분을 본 뒤 카카페로 넘어온 탓에 열람 편수가 부족해 보이지만 외전까지 모두 읽었다.





캐릭터와 대사, 깔끔한 작법에 과감한 전개까지. 읽지 않을 이유가 없다



입체적이고 각자의 당위를 갖는 매력적인 캐릭터들


정말 버릴 캐릭터가 없다. 300편 가까이 등장하는 수많은 캐릭터는 설정, 성격, 배경 모두 겹치는 바 없이 개성적이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내가 꿈꾸는 진정한 나라를 위해" 각자의 생을 거는 최선을 다한다는 점이다. 모두가 간절하다. 처절하게 이상을 좇는다. 다만 각자의 방향성이 다름이 비극이다.


악역이고 조연이고 모든 등장인물이 설득력을 갖게끔 내면 서술이 정성스럽다. 그로 인해 주인공이 분명 정해져 있음에도 군상극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는다. 각자가 걸어온 길과 이상을 이야기하며 사고의 흐름부터 행동까지 상당히 깔끔하게 점진적으로 풀어내어 이해에 매끄러운 작법도 큰 장점이다. 웹소설일지라도 작가가 캐릭터에 애정을 갖고 시간을 들이면 이렇게까지 쓸 수 있구나 감동하게 된다. 그리하여 결국, 모든 캐릭터는 독자에게도 애틋하게 남는다.


많은 캐릭터 가운데 주인공 주변인들을 몇 써보자면,



비서관 쥬로와 저항군 수장인 구름대장


머리 좋고 능력 좋고 사람됨도 괜찮은데 단 하나, 뒷배가 없다. 썩을 대로 썩은 카르카스에 희망이 없다며 개탄하지만 다른 나라로 이주할 마음은 없다. 그렇게 수완 좋은 애국자들이 모여 저항군을 결성했다. 하지만 어떤 것도 쉽지 않고 어둡기만 한 미래 앞에 애증만 쌓이지만 포기할 순 없다. 그래서 쥬로는 이상과 목표를 잊지 않되 현실적인 돌파구를 찾아 나섰고, 남주인 단테의 손을 빌려 나라를 뜯어고치고자 한다. 도망자로서 부채감을 안고 있다.


반면 구름대장은 여전히 저항군에 남아 무리를 책임지며 그늘 속에서 방안을 찾고자 한다. 가진 자들의 가면극을 밝은 곳에서 얼굴을 마주한 채로 깽판 놓는 것은 불가능했으므로. 그 자리에 남아 더러운 면들을 파고들고 처리하는 것이 제 몫의 애국이라 믿지만 어쩔 수 없이 지쳐간다.



창녀 패트리샤와 재상 사무엘


30년을 이어온 사랑이자 이상이다. 패트리샤는 셈이 빠르고 이해력이 좋고 판단력마저 훌륭했으나 빌어먹고 살았다. 그러다 운명처럼 사무엘을 만났다. 사무엘은 보통의 귀족과 달리 진실로 이 나라를 사랑했고 또 그만큼 그녀를 사랑해서 부조리를 단죄하고 제대로 된 왕을 세워 살만한 나라를 만들겠다 말한다.


하지만 계승권자인 1왕자는 멍청하기 짝이 없고 현왕은 무능하다. 그래서 교활하지만 영민한 2왕자 레지날드를 왕위에 세우고자 한다. 패트리샤와 살아갈 이 나라에 피바람이 부는 것은 원치 않으므로 책략과 외교로 방법을 강구한다. 그리고 패트리샤는 뒷골목에 고이는 정보와 추잡한 진실을 모아 비책을 제시하는 조언자로 역할 한다.


두 천재가 나라를 쥐락펴락하자 그토록 갈망하던 때가 머지않게 되었다. 둘의 결속은 단단하지만 언젠가부터 사랑이라 말하지 않는다. 알지만 떠나지 못한다. 서로만이 희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무엘은 타성에 젖고 현재에 익숙해지며 점점 자신이 그렸던 최초의 꿈이 무엇이었던가 잊고 만다.


같이 꾸던 꿈을 사무엘이 제 편할 대로 바꾸고 덧칠하는 동안 패트리샤는, 그래도 믿었다. 사랑이었고 유일한 이해자였으며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켜줄 최선의 길이었으므로. 하지만 자신과 나눴던 약속들을 다르게 기억하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바깥에 제 모습을 드러내기로 결심한다. 자신이 서게 될 자리는, 반역 성공 후 에보니와 단테가 이끌어갈 왕궁 앞 단두대일 것임을 안다. 목숨마저 아깝지 않을만큼 간절히 바라는 이상, 저 스스로 사창가로 걸어 들어가길 선택할 적부터 반드시 실현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던 미래, 그리고 끝내 제 손으로 죽이고 만 평생의 사랑. 패트리샤의 삶이 서글퍼 눈물이 났다.



가문에서 제명된 귀족 영애 다프네와 시셀린


다프네는 1왕자의 오른팔인 금수저 오브 금수저댁 유일한 손녀다. 난폭한 행실과 최악의 평판에도 보란 듯이 패악을 부리고 다니는 파티걸. 왕이 유서를 남기지 않고 급작스레 병사하게 되자 왕의 조카인 단테가 큰 위협이 되었다. 그래서 권력과 가문을 지키고 왕실을 수호하기 위해 제 유일한 혈육인 다프네와의 정략혼을 강제한다. 하지만 질풍노도의 시기를 살던 다프네는 내가 원해서 그 집 손녀가 된 게 아니잖아, 난 나로 살겠어-라는 중2병스러운 마인드로 차라리 가문에서 쫓겨나길 택한다. 호적에서 파였지만 여전히 그녀는 귀족이므로 '나투라'라는 성씨를 새롭게 받게 된다.


하지만 이 '나투라'는 이미 약속된 주인이 있었다. 언젠가 그 약속된 성을 받아내길 기다리며 피투성이의 삶을 견뎌내고 있던 그녀의 이름은 시셀린. 그녀 역시 한때 귀족이었으며 다프네처럼 2왕자를 연인으로 두었었다. 가문의 딸이 아니라 나 '나투라'로 살고자 하는 두 여자와 똑똑한 개새끼 레지날드의 이야기, 철부지에서 어엿한 기사로 성장해가는 다프네를 보는 즐거움이 있다.



집사 벤자민


독자들이 댓글창에서 패트리샤만큼이나 울부짖으며 찾던 최애캐 중 하나다. 이야기 전반을 통과하며 두번의 반전을 선물한다. 아무리 다량 스포 서평이라지만 반전까지 이야기할 마음은 없으므로 여기까지만. 얘기할 마음도 없으면서 이렇게 언급하는 이유는 초반부부터 벤자민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직책이 집사인지라 집중도가 낮기도 했고 첫 번째 반전이 들기 전까지 달리 눈부신 활약상이랄 것이 없기 때문. 하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나면 벤자민 때문에 다시 첫장을 펴고 싶어질 것이다. 


주변 인물들이 이러하니 두 주인공인 에보니와 단테는 얼마나 멋지겠는가. 그밖에도 에보니의 스승이자 죄수인 바르바라, 단테의 유모 마샤, 교장선생님네 부부와 레지날드 등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많다.




논리적인 서사와 무겁지 않은 메시지들


초반의 재판 부분이야 법리적인 것들이 이미 많이 공유되어 있으니 그저 '잘 썼다'고 평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정을 장악해 나가고 사회적 입지를 다지는 단계, 궁지에 몰고 몰리며 반역에 반역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의 서사는 그야말로 '정말 잘 썼다'고 평하지 않을 수 없다. 데뷔작이라 믿을 수 없을 정도다. 


아마추어 작가들이 많은 웹소설 판에서 논리 비약에 따른 억지 전개는 흔하고, 캐릭터 설정과 상충하는 오지랖 민폐 헛똑똑이 클리셰는 그보다 더 많다. 아침드라마 뺨치는 자극적인 인물 관계와 답답한 신파로 이어지는 억지 감동 루트는 기본 공식이다. 하지만 <에보니>는 그 편함에서 한켠 물러나 있다. 빡빡하리만큼 당위를 부연하고 그 과정은 구멍 없이 촘촘하다. 


한편 등장인물의 고뇌 속에 작가는 철학적 메시지를 조심스레 묻어둔다. 그저 물을 뿐이다. 그 말 잘하고 말 많은 작가가 주저리주저리 설명하지 않는다. 그 적당함이 좋았다. 개개인은 사유하는 존재이고 저마다의 다름을 인정한다면서 이율배반적이게도 유독 판타지에는 가르치려는 작가들이 많다. 그냥 왜 인물이 그 선택을 해야만 했는지, 그것만 풀어내면 될 일이다. 소크라테스도 그저 묻기만 하는 각자의 사유들을 어째서 그렇게들 가르치려 드는지, 작가가 쓴 글을 그저 읽어나갈 수밖에 없는 일방적인 관계에서 그건 정말이지 횡포다. 그 선을 존중함이 반가웠다.




오해와 삽질 없는 로맨스


주인공들의 성정을 알면 매우 납득 가능하다. 짧게 평하자면, 그들은 이상으로 나아가는 과정들도 불법이나 타협으로 오염시키지 않으려는 선하고 강한 의지가 있다. 진정한 노력은 빠르고 확실한 길을 찾는 데 쓰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는 길을 짧고 평탄하게 하는 것이라 믿고 있다. 제 손으로 만들 나라도 지금의 거지같은 나라도 모두 나의 조국이라는 애국심과, 피해를 줄이고 생명을 아끼는 인류애는 너무도 반짝거려 부럽기까지 하다. 강건한 이성과 처절한 노력, 과감한 도전을 함께 해나가는 두 주인공의 로맨스는 재는 것 없이 담대하고 용감하다. 연인이라는 말보다 소울메이트라는 단어가 더 적합해 보인다.


작가의 문체가 미사여구가 적고 문장이 길지 않은 편이다. 흔히들 단정하다고 하는 스타일. 그래서 꽁냥신도 꽤 담백하다. 하지만 충분히 미려하고 낭만적이다. 스토리상 숨 쉴 구멍이 로맨스신과 슈나이더성 식구들의 개그신 밖에 없어서 그런지 로맨스가 유달리 반가운 탓도 있겠다.


로맨스신은 호흡이 짧고 비중을 크게 할애하지 않는다. 대신 독백이나 대사로 많은 서술을 축약하는데, 정말이지 명대사가 많다. 특히 단테의 아버지인 선왕제를 기리기 위해 찾은 낡은 사당에서의 이틀이 인상적이다. 선왕제와 단테의 아픔을 마주하고 지켜보는 에보니의 단상, 그날의 분위기, 그녀의 프로포즈와 그들이 정의하는 사랑은 로맨스치고도 매우 로맨틱하다. 전반적으로 작가는 로맨스신을 호들갑스럽지 않지만 유쾌하게, 차분하지만 정적이지는 않게, 눈물 나지만 슬프지 않게, 그렇게 따뜻한 온도로 쓸 줄 아는 능력이 있다.


오해와 삽질에서 기인한 의도치 않은 밀당과 고구마를 로맨스의 백미라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질리언과 산코, 다프네와 헤레이스 커플의 에피소드가 있으니 섭섭치 마시길.





진입장벽을 넘어보자



고백하건대, 나는 <에보니>를 꾸역꾸역 읽은 적이 있고 중도 하차한 적이 서너 번 있다. 긴 이야기 않고 간추려 말하자면, 당신은 100편을 넘어서야 이 작품의 진가를 알게 될 것이다.


초반부의 이야기는 사실 로판 독자에게 있어서 익숙한 부분이 많다. 억울한 살인죄를 뒤집어 쓰고 감옥에서 피폐한 생을 견뎌내던 여주에게 어느 날 느닷없이 내밀어진 구원의 손길. 재판 과정에서 상처를 직면하고 극복해 나가는 모습. 상대 논리의 허점을 파고들어 엿먹이는 통쾌함. 밑도 끝도 없이 호의적인 슈나이더 성 식구들과 츤데레 남주. 누명을 벗고 화려하게 사교계에 등장하는 주인공. 전개와 설정에 있어 억지스러움은 없지만 클리셰가 많다.


하지만 까마귀 가면을 뒤집어쓰고 가상의 외국 상인을 연기하며 활약하면서부터 이야기가 재밌어진다. 가면을 벗고 제 이름으로 학교를 세운 뒤에는 더 재밌어진다. 단테를 정말 왕으로 만들 결심을 하고 유학을 다녀오고 나서부터는 하루를 기다리는 것이 괴로울 정도로 재밌다. 말 그대로 회차를 거듭할수록,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재미도 배가 된다. 


가문의 딸이었고 살인자였던 그녀는, 자유의지와 무관하게 물 흐르듯 순응하며 사는 동안 제게 주어진 것들을 모두 떨쳐내고 나서야 진짜 에보니가 된다. 그녀가 본래의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가에 집중할 수 있게 돕는 슈나이더성의 식구들은 정말이지 사랑스럽다.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사랑을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실천하는 과정은 비단 로맨스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질 높은 삶을 살겠다는 그녀의 행보를 보고 있노라면, 왜 소설의 제목이 <에보니>여야 했는지 자연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초반부의 이런 익숙함은 로판 독자들을 쉽게 끌어들이는 요인임은 부정할 수 없다. 딱 봐도 회귀나 빙의건만, 작가마다 서너 회차동안 주인공의 혼란을 서술하는 귀찮음을 감내하는 것은 익숙한 이야기를 찾아 읽는 독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시작은 같을지라도 비슷한 사건을 다르게 풀어나가는 것을 선호한다. 취향은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작품만의 뛰어난 개성을 죽이기에 아쉽다. 예상되는 전개인데 여주가 너무 오래 구르니 마음도 편치 못하다. 작가가 의도한 바인지는 알 수 없으나 진입장벽이 높은 셈이다. 인내를 갖고 중반을 넘어선 독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한다. 이게 어째서 밀리언 페이지가 아닐 수 있냐고. 하필이면 새롭게 왕좌를 차지한 밀리언페이지 작품이 온갖 비문과 설정 구멍에 캐릭터 붕괴까지, 정말 작가 이름값 덕분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기에 더 들끓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애 첫 블로그의 첫 글을 <에보니>를 위해 쓴다.


당신의 취향일 거라 확신할 순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을 아끼게 될 것이라 자신있게 말하겠다. 




'서평(스포주의) > 소장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령새 왕녀님 / 한류이  (0) 2018.03.05
캐스니어 비망록 / 흰울타리  (0) 2018.02.1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