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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전쟁범죄 #단편 #로판 #십꾸금 #노블

#가문이싫은금수저와 #순박한시골처녀 #동막골에서꽃피는사랑

#본편완결-외전기다리는중 #리디북스 #유료연재







로판에서 굉장히 보기 드문 단편이다. 리디스토리가 리디북스로 통합되면서 연재작들이 모두 유료 연재로 전환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유료 연재임에도 작가의 전작 <흰 사슴 잉그리드>와 비교했을 때보다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는 개인에 따라 트리거가 될법한 장치들을 모두 걷어냈기 때문이다. 데뷔작부터 팬덤을 형성한 작가이므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능력은 이미 검증되었다 볼 수 있다. 전작의 주요 키워드였던 마약 및 화간 등의 소재에 거리낌이 있어 도전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겁먹지 말고 시작해도 좋다 말하겠다.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읽히는 상식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



모든 인물의 시점과 사건 진행이 상식적이고 현실적이다. 흔히들 말하는 '정합성을 갖춘' 소설이라는 말이다. 행동과 사고 흐름이 이해되지 않는 인물이 단 한 명도 없고, 맥락을 벗어난 뜬금없는 억지 갈등 요소도 없고, 소설에나 존재할법한 터무니없는 장치도 없으며, 모든 에피소드가 자연스럽게 엮이며 진행된다. 절정에 이르러 극적인 부분이 있긴 하지만 과하다 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니까, 작품 그 자체만 두고 볼 때 흠결이 없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재미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겠으나 적어도 군더더기 없이 잘 쓴 소설임은 분명하다. 잘 짜인 틀과 적절한 때에 던져두고 늦지 않게 회수하는 떡밥, 로맨스로서의 달달함과 전쟁이라는 배경에서 오는 긴장감, 인물의 불안을 적절한 빈도로 활용하는 호흡까지. 이야기를 재밌게 하는 요소들의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진다. 이름값이 유명무실하게 아마추어보다 못한 저급한 글에 지친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이야기의 배경은 램록이라는 소국이 더블린이라는 강국으로부터의 독립 전쟁에서 승전한 후로, 각자 전후 수습 중인 불안정한 평화의 시기이다.  남주인 에런은 더블린의 부촌에서 나고 자란 금수저로 그중에서도 유력가 출신이다. 그럼에도 그는 착취로 쌓인 가문의 금자탑 앞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반항하고 저항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러다 시류에 휩쓸려 참전한 전쟁이 끝난 지금, 선택이되 선택이 아닌 거지의 삶을 살고 있다. 그렇게 되기까지 남주의 삶은 고단하기 짝이 없다. 전쟁터 한가운데에서도 가문의 세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무력함, 그간 자신을 지탱해오던 신념의 무용, 정치의 잔학성과 살육 앞에서 느끼는 인간성의 몰락, 그렇게 점점이 무너져 결국 또 도망치는 것만이 최선이라 변명하는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자학하며 살게 된 것이다. 그러다 적국이었던 램록의 시골 마을에서 여주인공 레일라를 만난다. 레일라는 전쟁의 두려움을 신문 속 이야기로 느낄 만큼 작은 도시, 거기서도 한참을 벗어난 외곽에 사는 촌부로 순박하고 단순한 성격이다. 명예에 얽매이지도 부를 탐하지도 않고 그저 분수에 맞게 탈 없이 사는 것에 만족하다 생에 처음 원하는 것이 에런이 된다. 남주 역시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과 주어질 것들을 거부하고 피하기에 급급하다 처음 욕심내는 것이 레일라다. 로맨스는 모두가 예상하는 패턴으로 전개에 있어 딱히 새로울 것은 없다. 남주가 스스로의 처지가 불안정한 탓에 자제하고 망설이면, 여주가 적극적으로 관계를 진전시킨다. 


이 소설의 진짜 매력은 로맨스보다 참전 군인인 남주가 오늘날까지 거쳐온 고뇌와 전쟁이 끝난 뒤 가장된 평화의 모습에 있다. 여주가 살던 시골 마을은 아이러니하게도 전쟁 중에는 위협을 느끼지 못하다가 전후 수습을 명분으로 군대가 들어오고 나서야 폭력을 경험한다. 승전한 군인들에게 주어진 권위 없는 권력은 전쟁의 광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강압적으로 휘둘려지며 문제를 일으킨다. 갈취에서 시작된 폭력은 적절한 때에 수습되지 못하고 살인에까지 이른다. 등장인물들을 통해 현실적인 PTSD 사례를 서술함으로써 로판에서 잘 다뤄지지 않는 전쟁의 상흔 그 자체에 주목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다만 전후 민족갈등을 해결하고 남주가 마을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이 드라마틱하고 또 피상적으로 다뤄져서 아쉬운 점이 있긴 하지만, 소설에서 굳이 완벽하게 해소되어야만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진입장벽을 넘어보자 



장르 분류가 로판으로 되어 있긴 한데, 램록과 더블린이라는 가상의 나라라는 설정 외에는 판타지적 요소가 없다. 이야기 전반을 구성하는 역사적 배경 외의 모든 면에서 역사시대물에 보다 부합하므로 팩션으로 접근해야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작가 후기에 따르면 1896년에 있었던 잔지바르와 영국의 전쟁에서 일부 설정을 차용했다고 한다.


굳이 아쉬운 점을 찾으라면, 나라 이름이 더블린으로 되어 있다 보니 자꾸만 현실의 더블린이 떠올라 초반부를 읽어나가며 국명과 도시명이 단번에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차피 한 권밖에 되지 않을 분량이었다면 실제 근대 역사를 배경으로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시기를 아일랜드 독립투쟁 이후로, 남주를 잉글랜드에서 온 군인으로, 여주는 아일랜드 더블린 구석의 목장에 사는 여주로 설정했다면, 민족갈등과 전쟁의 상처라는 큰 틀을 그대로 가지고 가는 게 어렵지 않았을 것 같은데 말이다. 일반적으로 장르 분류상 선호에 있어 로판보다는 일부일지언정 고증을 거친 역사시대물을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고, 또 세계관 전반을 모두 독창적으로 새롭게 설정하지 않는 이상 상상력만으로 이루어진 노력은 고증을 위한 자료 조사에 들인 노력에 비해 폄하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흰울타리 작가는 얼마든지 실존역사물도 훌륭하게 쓸 수 있는 실력이 있어서 괜한 미련이 남는다.  


기다무도 없고 대여권도 없는 작품이라 선뜻 결제하기에 주저할 수 있음을 이해한다. 그래서 당신이 값어치를 하는 작품이냐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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