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필사진
오늘의 엠마
오늘의 엠마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티스토리 뷰

#전쟁 #정치 #건국설화 #성장소설 #로판

#직진남의정석 #실존역사를연상케하는팩션 #꽁지깃으로때려줄테다

#본편완결-외전완결 #카카페독점 #기무





두 번이나 읽기를 포기했다가 카카페의 1시간 1편 기무 이벤트로 ‘그냥 한번~’ 하는 심정으로 다시 읽기 시작, 이벤트 종료 후 24시간을 기다리지 못해 질러버렸다. 기무임에도 80개의 소장권을 단번에 서슴없이 질렀다는 점에서 이 소설이 얼마나 재밌는지 어필이 되었으면 한다.





ㅣ 만약 당신이 건국설화를 모티프로 글을 쓰겠다면



판타지를 판타지답게 하는 많은 요소가 있겠지만, 이 소설에는 마법사나 소드마스터와 같은 먼치킨은 존재하지 않고, 성물이나 차원의 문과 같은 템빨도 없다. 또한 등장 인물 모두 흔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현실에서 찾을 수 있는 캐릭터 범주 내에 있다. 마법도 신력도 없는 세계관에서 <전령새 왕녀님>을 판타지로 만드는 요소는 가상의 국가 로이몬드의 건국설화에 있다. 황금피를 가진 금혈인은 생명을 귀히 여기고 사랑을 베푸는 선한 자로, 그의 정의 덕분에 피폐했던 인류는 구원받았고 그는 죽고 난 후에도 이 땅을 수호하겠다는 약속을 남긴다. 하지만 은혜를 잊어가는 사람들 속에서,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산지의 남자와 평야의 여자, 그리고 황금의 아이가 금혈인의 유지를 받들어 땅을 수호했다는 내용이다. 


여느 건국신화의 구조와 마찬가지로 사용된 상징들은 국가의 권력 구조를 담고 있는데, 산지의 남자와 평야의 여자는 로이몬드의 서부와 중부 지역을, 황금의 아이는 왕가 메르디스를 뜻한다. 그로 인해 왕족의 혈맥에는 황금피가 흐른다는 미신이 남아 있는데, 이 때문에 왕족의 상처는 함부로 물로 씻어내지 않고 목화 기름을 먹인 헝겊으로 닦은 뒤 태워야 함이 법도이다. 여기서 두 가지 이야기를 연상할 수 있는데, 하나는 신에게는 피가 아닌 황금이 몸에 흐른다 믿어 황금에 대한 집착이 남달랐던 이집트 신화이고, 다른 하나는 금잔화를 담근 인퓨즈드 오일로 상처를 소독했다는 로마의 민간요법이다. 실제로 작가가 현존하는 이야기를 차용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결과적으로 작가가 창작한 가상의 나라임에도 어딘가에 있을법한, 누가 말해주면 정말 그런가보다 믿을 법한 잘 만들어진 건국설화로 완성됐다. 장르적 특성상 건국신화나 설화를 모티프로 하여 세계관부터 짜임새 있게 쓰고자 노력한 글들이 많지만 설화를 이처럼 비중 있고 단단하게 활용한 작품은 흔치 않다. 예컨대 단순히 판타지 세계임을 알게 하는 도구일 뿐 스토리 진행과는 하등 상관없기도 하고, 마력이나 신력 등 지나치게 많은 설정을 함께 끌어다 쓴 탓에 설화가 굳이 필요했나 의문을 남기기도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억지스러운 전개에 당위성을 주는 일회성 장치로 소모된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적절한 밀도로, 유난스럽지 않고 무겁지 않게 효율적으로 활용했음이 인상적이다. 


이 외에도 역사적 사실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를 찾는 재미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소금불 에피소드인데 이는 그리스불을 차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토템을 실질적으로 믿는 적국 그라노르의 풍토는 제갈량의 남만 정벌을 연상케 한다. 대역을 사용해 적군을 교란하거나 식량과 관련된 전략은 널리 알려진 병법이다. 이처럼 메인 에피소드 전반이 실존 역사를 뒤져보면 틀림없이 있을 고증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판타지이지만 보통의 판타지라고 하기엔 미안하다. 그렇다고 가상역사물이나 대체역사물에도 해당하지 않으므로, 팩션의 범주 어딘가에 놓여야 마땅한 소설이 아닌가 싶다.





ㅣ 익숙한 구도에도 새로움은 존재할 수 있다



남주 시점에서 전개되는 로맨스


작중 상황이 전쟁 중인지라 로맨스 분량이 적을 수밖에 없는데, 거기다 여주인 제르가 설화에 따라 전령새를 오가니 전개도 더디다. 하지만 충분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는데, 그건 단언컨대 작가의 섬세하고 꽤나 짙은 서술 덕분이다. 특이하게도 로맨스의 전개는 남주인 발하일의 시점에서 주로 진행된다. 설렘에서 격정으로 깊어지는 단계까지 스킨십은 아주 담백하기 그지없다. 단순 생략을 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수위랄 것이 없다. 그럼에도 농밀하다 말할 수 있는 건 심리 서술이 그 '하지 않음'의 공백을 메우기 때문이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여주인 제르가 사과를 건네받는 장면이다. 정말 별것 아닌, 말 그대로 사과를 건네주는 장면에서 에로스의 인식이 시작되는데, 이야기의 주체가 남성이라는 것에 어떠한 위화감도 받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다. 감수성이 풍부한 문장의 이음매를 보면서, 성별을 떠나 낯섦과 설렘, 사랑의 시작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게 한 작가의 섬세함에 감탄했다.


로맨스는 크게 봤을 때 필리아와 아가페가 우선한 후 에로스가 진전되는 형식을 취한다. 그러다 남주 발하일이 제 마음을 자각한 이후에는 아가페와 필리아, 에로스 즉 사랑의 모든 면면이 치우침 없이 동시에 깊어진다. 이러한 방향성은 적아의 구별이 생과 직결되는 전시라는 작중 상황과 왕녀와 신하라는 수직관계까지 모나지 않게 안고 갈 수 있게 만든다. 또한 서로가 서로여야 하는 이유를 손꼽지 않고도 사랑의 세 형태를 하나의 관계로 녹여내는 방식으로 이상적 사랑을 표현했다는 것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대부분의 로맨스 작품에서 남주 시점은 외전의 형식으로, 본능에 충실한 다소 부정적인 의미의 에로스적 사랑에 집중하여 소유욕과 집착을 중요 키워드로 풀어간다는 점에서 여타 작품의 형식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개인적으로 수위 높은 표현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 생각하고, 그저 캐릭터 기본 설정과 상충하지 않고 서사에 방해되지만 않으면 된다는 주의라 전체연령가 스킨십이 실망스럽지 않았다. 게다가 작가의 진득하고 세밀한 감정 서술이 그 아쉬움을 충분히 상쇄할만하다고 생각한다.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외전에 이르러서는 평균적인 로판의 작법을 그대로 따라서 연애하고 육아하는 보통의 이야기를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전개이나, 모두가 납득할만한 해피엔딩을 보여주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는 데 동의한다.


많은 작품에서 남주의 남성성이나 일편단심을 확인하는 장치로 폭력성 있는 에피소드를 취하는데, 이 작품의 남주는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여주의 감정이 진전되기를 기다려주고 때를 위해 멈출 줄 안다는 점에서 흠결 없는 직진남이라 매우 바람직하다. 감정의 깊이가 같지 않음에 분노하여 이성을 잃고 상대를 몰아붙이거나, 거절을 거절로 받아들이지 않는 일방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행태를 옹호하는 글이 흔한데, 사실 그럴 때마다 불편함을 느낀다. 로맨스의 비중이 낮은 소설이라면 관계변화의 감정선을 쓰기가 귀찮았나 싶어 그저 작가의 성의 없음에 실망할 뿐이다. 하지만 로맨스의 향방을 중심으로 하는 소설에서, 그것도 여성향 장르에 심지어 작가가 여성이기까지 할 때에는 욕지기가 난다. 직진남이고 짐승남이고 간에, 상대를 존중하지 않고 본인 좋을 대로 행동한 탓에 현실에서 얼마나 끔찍한 범죄들로 이어지는지 많은 사례로 빈번히 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니 다 괜찮다, 소설에서 현실을 찾지 말라는 식의 글을 보고 있노라면 살색이 없다 뿐이지 폭력적인 성포르노와 무엇이 다른지 의문이 든다. 이야기에 불필요하다면 시대상에 의한 성 착취의 이면까지 보여줘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빈약한 논리의 왜곡된 성관념을 독자에게 주입해서는 안 된다. 그 과정에서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남성성의 표현은 존중받아야 할 창작의 범위에 용인될 수 없다. 그걸 정말 사랑이라 하고 싶다면 학습된 폭력이나 가스라이팅, 스톡홀름 증후군 등으로 이어질 어떠한 반론의 여지가 없도록 치밀한 감정선과 설득력 있는 사건을 필히 서술해야 할 것이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만능키로 이용하는 작법은 불성실이 최선의 변명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작가 스스로 능력 부족을 시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또 굳이 쓰고싶다면 장르를 라노벨로 분류하거나 강제적 관계나 약물 및 폭력 묘사에 주의하라는 키워드를 명확하게 기입해두었으면 한다. 무료로 공개하는 습작도 아니고, 정식 출간 계약으로 독자에게 유료 기반으로 공개되는 작품에서 그건 최소한의 예의고 친절이라 말하고 싶다.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들


할리퀸, 그러니까 B급 로맨스가 아니라 정석적 분류의 로맨스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이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증기 기관이 없는 산업화 이전의 중세를 배경으로 다루고 있음에도 빅토리아 여왕 이후에 등장한 유명 여류 작가들의 캐릭터들을 생각나게 한다. 전형적이기는 하지만 웹소설에서 정통 로맨스 소설의 캐릭터가 주인공이 외의 인물들까지 확대된 경우는 드문 일이므로, 고구마 전담은 여성캐라는 천편일률적인 작법에 지친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주인공을 제외한 조연 몇몇만 이야기하자면, 우선 데미에라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야심가다. 강하고 절대적인 힘을 추구하는 캐릭터로 목표 실현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할리퀸에서 여성 캐릭터의 야망이라 함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상대에게 복수하거나 굴복시키기 위한 저열한 수단, 사랑받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보상, 질투에 의해 발현된 비틀린 자아실현 정도의 의미를 갖는다. 말 그대로 정치권력을 추구하는 캐릭터는 드물고, 거기에 사랑이 끼지 않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거기다 다른 권력자에 의해 꼭두각시나 허수아비로 이용되지 않고 주체적으로 앞길을 도모하는, 온전한 의미에서의 야망가가 주인공이 아닌 조연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본 적 없다.


가문에 의해 탑에 갇혀 은폐된 천재 과학자이자 히키코모리인 아델은 사회성이 부족하지만 누구보다도 상식적인 사고를 하며 이야기를 시원하게 이끌어 나간다. 인간 관계에 서툰 여성이라면 언제나 악의없이 민폐를 끼친다는 클리셰를 깨부순다. 오히려 사람 사이의 경험이 적기 때문에 가치 판단 기준이 명확해서 어른보다 어린 아이들이 더 도덕적이고 준법적 경향을 보인다던 언젠가 읽었던 기사가 생각났다. 이 외에 셀로나와 힐데, 델리아를 보며 제 생을 제 의지로 꾸려나가기 위해서 자신만의 방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버지니아 울프의 진리를 확인할 수 있어 좋았다.





ㅣ 진입장벽을 넘어보자



가장 높은 첫 번째 장벽은 단연 제목이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적절한 제목임을 알지만 제목 자체에서 오는 거부감은 분명 존재한다. 또한 초반부를 이끄는 재미의 9할은 개그와 오해인데, 서브남조와 구르륵구르륵이 주는 유쾌함과 의사소통 과정에의 어려움에서 유발되는 오해 및 착각이 초반의 주된 내용이다. 다만 그 재미를 30편 이상 길게 끌어갔다는 점은 실수라 생각한다. 나는 수치와 조롱에서 오는 웃음이 불편해 하차했고, 그 즐거움을 좇던 독자들은 다시 인간으로 돌아온 이후 거의 90편까지 전령새를 찾는다. 재미가 없어졌다거나 소설의 특색이 없어졌다고까지 말하기도 하는데 이건 그 독자들이 진상이라고 욕할 것이 아니라, 어그로를 너무 오래 끌어서 독자들이 중심 맥락을 잊게끔 만든 패착이라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이유로 이 작품을 개그/오해/착각계 힐링물로 접근한다면 실망스러울 것이라 미리 이야기하고 싶다.


또 하나의 아쉬움은 전쟁물임에도 작중 설명만으로 지형지물이 명확하게 그려낼 수 없다는 어려움에 있다. 국기에 그려져 있는 동부와 중부, 서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갑자기 있는 줄도 몰랐던 남부가 언급되더니 종전에 이르러서야 북부의 존재가 드러난다. 또한 로이몬드의 비기인 소금불을 설명하면서 해전에 유용하게 쓰였다 하는데 제국 어디쯤 바다가 붙어 있는지, 그게 해협인지 대양인지 내내 알 수 없다가, 외전의 신혼여행 에피소드에서 남부의 큰 바다라고 언급된다. 또한 지리를 활용하는 유격전에서도 이미지를 알맞게 그려내기 어렵다. 이처럼 지형지물이 명확히 그려지지 않아서 전술, 전략을 논하는 파트에서 '아 이거 중요한 부분 아니었으면, 그냥 심리전 했으면'하며 못내 바라게 된다.  사실 소설 초반에 지역마다 얽힌 정치 이익 관계를 설명하면서 지리적 위치가 상술되긴 했다. 하지만 200화 가까운 장편 소설에서 두 번 이상 언급되지 않는 설정을 일일이 기억하기란 어렵다. 본편 완결 후에 몰아 읽은 나도 이런데 주 3회 연재 중에 읽은 독자들의 상황은 더 어려웠을 것이다. 새 빙의물이었고, 또 전령새가 내내 역할 하는데 어째서 조감도라는 좋은 설정을 적극 활용하지 못했는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실 이러한 혼란을 가중시키는 데에는 작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고유명사에 ㄹ이 쓰여서 쉽게 기억되지 않는다는 이유가 있다. 로이몬드의 지역별 군대명인 로이몽, 로하나임, 로페체, 주요 가문명인 메르디스, 루마레스, 성(castle)명인 시옐, 하델, 루드, 주요 인물명인 레수펠, 린드베시, 데미에라, 이젤리아, 길레딜, 델리아, 넬리, 아델, 힐데, 셀로나, 대런, 루크 등 정말 ㄹ이 엄청나게 사용되어서 외우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중요한 부분에서는 시녀장 델리아, 2왕녀 데미에라 이렇게 설명을 부연하는 친절 덕분에 읽기에 고단하진 않다. 다만 처음 읽기 시작하시는 분들에게 명칭과 지리에 관한 서술이 나올 경우 나중에 또 나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흘려 읽지 않기를 권한다.


두 주인공이 신뢰를 쌓기까지 의심을 거듭하며 엇박자를 내는 과정이 길어 전개 속도에 호불호가 있다. 장르 특성상 여성 독자가 많아 남주 발하일에 대한 불만이 많았는데, 전시에 총사령관이라는 책임감을 안고 적아의 구별이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임을 잊지 않는다면 느린 전개라고만 볼 수는 없다고 변호하고 싶다. 주군이라 해도 사랑하는 여자라 할지라도, 무조건 신뢰하지 않는 이성적인 모습은 오히려 발하일의 위치에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태도라 봐야 한다. 다만 그 '이성적 의심병자'의 모습이 사랑인가 아닌가에도 적용되어 동일 패턴이 너무 반복되었다는 비판에 일견 동의한다. 하지만 제 마음을 자각하고 고백한 후에는 오해도 내숭도 없이 시원하게 전개되니 조금 기다려달라 말하고 싶다. 전시상황이 숨 막히고 갑갑하게 돌아가므로, 작가의 입장에서 해당 부분을 개그로 풀어내는 것으로 이야기의 완급을 조절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남주보다 여주의 태도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살기 위해서 사람들을 피해 도망 다니고 없는 듯이 살고자 하던 왕녀가 새가 되자마자 어떤 위화감도 없이 눈에 띄려 발악하는 것, 목숨을 부지하는 것만이 유일한 삶의 이유였는데 명령을 무시하면서까지 주체적으로 전쟁에 개입하다 스틱스강 목전에서 유턴하면서도 생의 집착을 보이지 않은 것, 눈치보고 주의하며 22년을 살았는데 인간으로 돌아오자마자 온갖 말실수를 하며 제 행동을 제어하지 못했던 것, 그 후에도 단순히 목숨을 위해 대리 역할만 하며 숨어있겠다 선언했으면서 적군 교란을 위해 제가 미끼가 되겠다 적극 설득하던 것 등 유독 여주에 한해서만 흐름이 매끄럽지 못한 면이 있다. 이해할 수 없는 비논리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물 흐르듯 읽어나가기에 덜컥거리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이는 캐릭터의 가치관 변화 과정이 사건과 함께 진행되거나 그보다 앞섰더라면, 혹은 그러한 변화를 암시하는 행동들이 미끼처럼 사전에 있었더라면 급작스럽고 당황스러운 느낌 없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내면 성장 과정을 풀어내는 시점이 항상 늦다는 점이 아쉬웠다. 일단 행동부터 하고 이르게는 3화쯤, 늦게는 10화쯤 후에 변화에 관해 풀어내어 이해함에 있어서 비합리/비논리가 없음에도 뒷맛이 텁텁하게 남는다. 물론 그저 작가의 문체라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해당 작품과 별개의 사실로, 많은 웹소설 작가들의 경우 독자들이 납득하지 못한 서사, 비약, 설정 오류 등을 폭발하는 댓글창을 보고 몇 회차 뒤에 내용을 보충하거나 수정본으로 교체하기도 하고, 더 나쁘게는 외전에서 후술하는 경우도 있다. 조아라와 같은 자유연재 플랫폼에서는 아예 리메이크 형식으로 대거 수정 후 재연재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오비이락이라고 어쨌거나 장려할만한 작법은 아니다. 하지만 중반 이후 그러한 문제는 크게 개선되고 2/3를 넘어서면 의아하다 느낄만한 구간은 전혀 없다. 퇴고한 정식 출간본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평(스포주의) > 소장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캐스니어 비망록 / 흰울타리  (0) 2018.02.10
에보니 / 자야  (1) 2018.02.03
댓글